11살,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타계하며 그의 가정은 그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기나기고 아픈 몰락의 길을 걸었다. 집에서 쫒기듯 나와 살게 된 청계천 무허가 판잣집은 도시정비 사업으로 헐리면서 경기도 광주시의 광주대단지로 강제이주를 당했다. 채석장에서 일하고 산에서 나물을 캔 후 팔아야 했던 어머니를 대신해 소년 가장 노릇을 해야 했던 김동연은 17세의 나이에 덕수상업고등학교에 재학 중 한국신탁은행(현 하나은행)에 합격해 입사했다.

그러나 합격의 기쁨도 잠시, 상고 출신이라는 큰 벽에 부딪힌 김동연은 100미터 달리기 시합에서 50미터쯤 뒤처진 출발선상에서 뛰는 느낌을 받았다. 자기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키는 ‘반란’이 필요했던 김동연은 야간대학 진학과 더불어 은행 합숙소에서 옆 방 선배가 쓰레기통에 버린 ‘고시 수험생을 위한 잡지’를 우연히 보게 된 것을 계기로 관료가 되기로 결심한다. 낮엔 은행원, 밤엔 대학생, 새벽엔 고시생이라는 1인 3역을 하게 된 것이다.

1983년 입법고시와 행정고시에 모두 합격한 김동연의 얼굴을 뜨겁게 한 말이 있었다. “요새는 별 희한한 학교 나온 애들도 시험 붙어서 여기까지 오네.”, “야간대학밖에 못 다니는 놈.”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변화시키는 ‘반란’을 멈출 수 없음을 직감한 김동연은 피나는 노력 끝에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미시간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최단기간 공공정책학 석박사 취득 기록을 세웠으며, 2002년에는 대통령실 비서실장 보좌관, 세계은행 선임정책관, 경제금융비서관,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을 거쳐 기획재정부 2차관, 국무조정실장에 임명되었다. 2013년 10월 큰아들을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으로 먼저 떠나보내면서도 발인을 마친 당일 사무실로 출근해 ‘원전비리 종합대책’을 직접 발표하는 등 김동연은 공직자로서 늘 최선을 다했다. 그는 “큰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거나 스스로 비전이 없어질 때, 문제를 알면서도 침묵할 때, 잘못된 정책을 국민을 위한 것인 줄 알고 고집하는 확신범이란 생각이 들 때.’ 김동연은 공직을 떠날 때를 이렇게 정의내리고 있었고, 이 신념에 따라 2015년 국무조정실장 직을 사임했다. 그 후 칩거 중이었던 김동연에게는 먼저 떠난 큰아들에 대한 미안함을 되새기게 하는 제의를 받는다. 아주대학교 총장 후보군에 올리겠다는 제의였다. 아주대 총장으로 취임한 직후에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학생들을 만나 대화하려 애썼다.

큰아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 큰아들의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렇게 김동연은 자기 찬스로 각자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사회, 도전을 겁내지 않고 실패를 기회로 만드는 사회, 서로를 공감하고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우리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꿔달라는 청와대의 요청에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으로 다시 등판한 김동연은 재임 중 3%대의 경제성장률 회복,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달성했다. 혁신성장의 전도사로서 벤처붐을 일으키는 초석을 놓았다. 그러나 2005년 한 세대 앞을 보고 만든 ‘비전 2030’을 실천하지도 못한 채 무거운 부담감을 갖고 경제부총리 직을 사임했다.

그 후 정치권의 모든 영입 제안을 거절한 김동연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기회를 찾을 수 있는 ‘기회복지안전망’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더 많은 기회, 더 고른 기회, 튼튼한 기회복지안전망을 만들어 국민의 삶을 보장하는 국가를 만드는 것, 김동연의 가슴을 뛰게 하는 목표가 되었다.

이제 김동연은 인구 1,390만의 최대 지방자치단체인 경기도에서 ‘경기찬스’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기회, 내 집 마련의 기회, 삶을 옥죄는 현실 속에 무언가를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경기도를 기회가 강물처럼 넘쳐흐르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김동연은 그렇게 경기도부터 새롭게 바꾸는 것에 모든 것을 걸기로 했다.